• 경기도박물관 인스타그램
  • 경기도박물관 트위터
  • 경기도박물관 페이스북

© 2018 by 경기도박물관

비색청자와

세밀가귀

고려청자

The Goryeo Celadons

비색청자의 비밀

The Secret of the jade Celadons of Goryeo

고려동경의 비밀

The Secret of the Mirror of Goryeo

귀국, 에필로그

Return and Epilogue

“도기의 빛깔이 푸른 것을 고려인은 비색이라고 한다.

근래에 만드는 솜씨와 빛깔이 더욱 좋아졌다.” 
陶器色之青者 麗人謂之翡色 近年以來 制作工巧 - 卷32 器皿3 陶尊

​ 위 문장은 <고려도경>에서 우리에게 가장 널리 알려진 표현이다. 서긍이 고려를 다녀간 얼마 후 남송의 태평노인이 지은 <수중금>에서 “건주의 차, 촉의 비단, 정요의 백자, 절강의 차 등과 함께 고려 비색은 모두 천하제일이다. 다른 곳에서는 따라 하고자 해도 도저히 할 수 없는 것들이다.” 라고 하며 고려의 청자를 극찬하였다.

 

 동 시대 중국인의 이와 같은 표현은 이전에 볼 수 없었다. 또한 고려 공예는 장인의 뛰어난 기술로 탄생한 명품이었다. 왕실은 솜씨 좋은 장인을 궁성 주변에 두고 우대하여 최고 품질의 물품을 만들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서긍은 나전(螺鈿), 자수그림(繡圖), 청자 잔 받침(盤盞), 박산로(博山爐), 청자 매병(陶尊) 등이 매우 정교하게 제작되었다고 하였다. 

고려청자 The Goryeo Celadons

“(고려청자는) 월주요(越州窯)의 옛날 비색이나

여주요(汝州窯)에서 요즘 생산되는 도자기와 대체로 유사하다.”
則越州古祕色 汝州新窯器 大槩相類 - 卷32 器皿3 陶爐 

 서긍은 궁궐과 숙소에서 사용한 그릇을 상세하게 기록하였다. 사절단이 쓰는 만큼 귀한 금과 은으로 된 금속기나 청자를 주로 언급하였으며 근래에 들어 품질이 좋아졌다고 하였다. 그릇은 용도에 따라 술과 물 그리고 차 등 액체를 담는 기종, 향을 피는데 사용한 향구(香具)와 식기류, 꽃과 관련된 용구, 기타 등으로 구분된다. 또한 그릇은 사용자의 신분에 따라 차등이 있었는데 금속기와 더불어 비색청자를 가장 귀하게 여겼다.

 

 서긍은 비색의 참외모양 술그릇이 가장 독특하며, 이외의 기종은 중국의 ‘정기제도(定器制度)’를 모방한 것으로 이해하였다. 하지만 실제 고려청자는 활발한 무역으로 여러 나라의 제작기법을 수용하고 재해석하여 최고의 기술수준에 도달할 수 있었다. 

靑瓷麒麟形香爐

청자 기린 모양 향로 

고려 12세기, 아모레퍼시픽미술관

靑磁陽刻牧丹唐草龍文瓜形梅甁

청자양각모란넝쿨 용무늬매병

고려 12세기, 국립중앙박물관 

비색청자의 비밀 The Secret of the jade Celadons of Goryeo

​​ 서긍이 감탄했던 비색(翡色)의 고려청자는 맑고 푸르면서 은은한 빛깔이 감도는 명품 도자였다. 이러한 고려청자의 빛깔은 어떻게 탄생된 것일까? 우선 도자기는 태토와 유약, 안료와 번조의 제작과정을 거치며 흙과 불의 조화에 의해 탄생된다. 빛깔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유약이다. 유약은 점토에 식물의 재를 섞어서 만드는데, 칼슘, 칼륨, 나트륨 등의 성분이 융제역할을 하며 유리질로 변화시킨다. 융제 성분이 많을수록 유약은 두꺼워지며, 깊은 푸른 맛이 난다. 또한 산화철 성분으로 푸른색의 밝기를 조절하며, 유약의 기포는 빛을 반사하여 투명도를 높혀 준다. 유약을 바른 청자는 밀폐된 가마에서 철 성분을 환원상태가 되도록 구워 다시 한번 푸른색을 조절한다.

 

 비색청자는 유약의 성분과 번조 분위기의 조절이 핵심 기술이었다. 한편 청자는 세계제일의 반도체와 제작기술이 유사하다. 둘 다 규소를 원료하며 에너지의 불연속성을 띄는 물질적 특성을 갖기 때문이다. 고려의 도공은 우리만의 기술을 얻기 위해 오랜 기간 실험과 노력을 반복하였다. 제작기술의 진화를 통해 마침내 ‘비색 청자’라는 최상의 결과물을 탄생시킨 것이다.       

고려동경의 비밀 The Secret of the Mirror of Goryeo

 고려시대 거울은 물건을 비추는 화장도구로서의 역할을 하면서 다수가 제작되었다. 거울의 재료는 청동을 사용하였는데, 고려시대부터는 이전 시대에 비해 주석함량이 크게 낮아지는 변화를 보인다. 이러한 재료의 변화는 거울 제작에 있어 새로운 기술을 요구하게 된다. 거울의 소재인 청동은 붉은색의 구리와 흰색의 주석으로 만든 합금으로 주석의 함량에 따라  금속색이 변하게 된다. 주석함량이 높아질수록 청동의 금속색은 붉은색에서 노란색으로 바뀌었다가 점차 은백색으로 변한다. 이로 인해 거울의 빛 반사도가 높아 물체가 잘 보이게 되지만 금속의 성질도 함께 바뀌어 외부 충격에 쉽게 깨진다는 단점이 있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고려의 장인들은 거울의 경면에 특별한 처리를 시도한다. 주석함량이 높은 은백색의 거울은 빛 반사율이 높아서 연마만으로 거울면을 완성시킬 수 있는 반면에 주석함량이 적은 거울의 면은 백색 금속인 주석과 수은으로 거울 면에 막을 입혀 반사율을 높였다. 이러한 고려 거울의 피막 처리는 당시 값비싼 주석의 사용을 줄이면서도 쉽게 깨지지 않는 거울을 만드는 실용적인 방법이었다. 

귀국, 에필로그 Return and Epilogue

 “정사와 부사는 관반(館伴)과 문밖에서 말을 세우고 작별 인사를 하고, 관반은 말 위에서 친히 술을 따라 사자(使者)에게 권한다. 마시는 것이 끝나면 각각 헤어진다.”
使副與館伴 立馬于門外 敍別 館伴就馬上 親酌以勸 使者飮畢 各分袂 - 卷26 燕禮 西郊送行

  한 달 간의 일정을 마치고 귀국 준비를 하자 왕은 황제에게 보낼 표문을 전달하는 행사(배표)를 열고 연회(배표연)를 베풀었다. 그리고 궁궐 앞뜰에서 왕은 직접 사신단에게 이별주를 전한다. 다음날인 사절단은 순천관을 떠나 서교정에 도착하면, 왕이 보낸 국상이 술과 음식을 베풀고 접반관은 군산도까지 동행하여 배웅하였다. 하지만 사절단의 귀국길은 기상악화로 정박이 잦았으며 중국까지 도착하는데 뱃길만 42일이나 걸렸다.

“휘종은 <고려도경>을 보고 매우 기뻐하며, (서긍을) 궁전으로 불러 높은 벼슬을 내리었다.” 
徽宗皇帝 覽其書大說 召對便殿 賜同進士出身 - 行狀

 서긍이 돌아가서 쓴 <고려도경>은 몇 해 후 고려에도 전해졌다. 하지만 책 내용은 조선 전기까지 간간히 인용되는 정도에 불과했다. 19세기 무렵 중국과 조선에서 다시 등장하여 본격적으로 알려진다. 마침 조선에서 고려의 인식이 개선되면서 개경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이 무렵 한재렴의 <고려고도징>이 발간되었고, 신위는 <경수당전고>에 수록된 ‘제서긍고려도경’이란 시에서 옛 개경을 노래하였다. <고려도경>은 실학자의 역사인식에도 영향을 미쳤는데, ‘발해’를 중시한 한국사 인식 체계는 유득공의 <발해고>나 한치윤의 <해동역사>의 서술체계에도 이어지게 되었다.